사리와공의(송재국교수)

 

사리(私利)와 공의(公義)


청주대학교 문화철학부 교수 송재국


맹자(孟子)가 양(梁)나라를 방문하니 혜왕(惠王)이 반갑게 맞이하여 말했다. “어르신께서 멀리서 이곳까지 오셨으니(좋은 가르침을 주실 것이니) 이제 우리나라(梁)에게는 큰 이로움이 있겠지요?” 맹자는 대답하여 말했다. ”왕께서는 하필 이로움을 찾으십니까? 백성을 잘 살게 하는 정치의 올바른 기준과 원칙은 仁과 義에 있는 것이니 부디 義로움을 찾으십시오. “


오늘날 개인이나 기업, 더 나아가 단위국가들 까지도 경쟁적 관계에 있는 대상들과의 관계에서 이익을 많이 취하는 것을 지상의 과제로 삼아 골몰하고 있다. 자기편의 이익을 얻기 위해서라면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다른 편의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 당연시 되고 있는 풍조이다. 그 처절한 싸움에서 이기면 모두가 善이고 지면 전부가 惡이다. 21세기 현대 사회의 속성은 이른바 정보와 가치를 공유하고 있는 ‘열린 지구촌 단위의공동체’이다. 과연 ‘함께 더불어 살아갈 수밖에 없는 오늘의 공동체적 삶’속에서도 특정 이익에 집착하는 방식만으로 바람직한 삶의 이상을 실현할 수 있을까?


이익이란 참으로 냉정해서 이해 당사자들 모두에게 공평하거나 관대하지 않다. 어느 한편이 이익을 취하면 그것 때문에 다른 쪽에서는 반드시 손해를 보게 되는 것이다. 주식에 투자하거나 부동산으로 돈을 벌려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자기 쪽에 승산이 있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그것은 기대로 끝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익이란 결코 특정인만을 사랑하여 찾아가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억지로라도 이익을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 때로는 여러 가지 편법과 탈법도 감행한다. 다른 이에게 돌아가는 혜택이나 희망을 희생시켜서라도 나의 주머니를 채우려 하는 것인데, 이것이 바로 私的利益으로 귀결된다. 그리고 그러한 사적이익의 독점은 어딘가에 상대적인 불이익을 발생시킨다.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 안에서 발생하는 특정의 私利는 반드시 구성원 간에 불공평과 불만과 불편을 양산하게 되고 이것이 심화 되면 그 사회는 분열되고 붕괴된다.


맹자는 이를 경계한 것으로 참된 정치는 그러한 불공평과 분열을 예비해야 하는 것이며 이는 義로움을 정치의 표준으로 삼아야 해결할 수 있음을 갈파한 것이다. 義로움의 본질은 私가 아닌 公에 있는 것으로 義의 속성은 公義인 것이다.

利와 義는 小利와 大義로 구분하기도 하고, 私利와 公義로 나누기도 한다. 맹자의 王道政治는 私利와 公義를 엄격히 구분하는 것에서 출발하고 있다. 사적 이익에 집착하는 것은 소인배들의 일거이이고 공정 의리의 추구는 군자의 사명으로서, 진정한 정치적 이념은 공동체의 이익을 보장하는 공의의 실현에 있음을 말한 것이다.


사와 공이란 글자에 공통으로 들어가는 삼각형 모양의 ? 는 사사로움을 뜻하는 것으로 “오른쪽 팔을 자기 쪽으로 구부려 무언가를 움켜잡는 모양”을 상형한 것이다. 팔꿈치란 그 골격 구조상 자기 쪽으로만 구부러지게 되어있기에 언제나 자기의 이익에만 충실한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私란 곡식(벼, 먹을 것, 재물)을 자기만 혼자 먹겠다고 자기 쪽으로 끌어안고 있는 자세를 상징한 것이다. 이에 비하여 公이란 그 움켜잡았던 팔꿈치를 두 손 모두 양옆으로 활짝 펴서(八) 먹을 것을 남들에게 나누고 베푸는 의미를 담고 있는 글자이다. 여럿에게 곡식을 나누어 줄때는 편중되지 않고 고르게 베풀어야 하는 것이니, 마치도 저울이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균형을 유지해야 하듯이, 나누는 양편이 동일한 무게를 갖게 하는 것이다. 이러려면 반드시 짝수라야 가능한 것이다. 그러므로 漢字에서 짝수를 나타내는 二, 四, 六, 八, 十은 모두 공평을 대표하는 二(八)의 글자 모양이 들어있는 것이다.


私는 사사로움을 추구함이 그 속성이며, 義는 公共性을 추구함이 그 본질인 것이기에, 私利는 버리고 公義를 취해야 하는 것이 공동체적 삶을 구현할 책임이 있는 군왕(지도자)에게 주어진 사명인 것이다.


요즘에 공적 책무가 주어진 사회지도층에서 극단으로 팔꿈치를 오므리고 웅크려서 자신들의 이익만을 편취하는 부끄러운 꼴 들이 일어나고 있다. 소수의 지도층에서 이익을 독점하면 다수의 백성들이 배고프게 되는 것은 자명한 이치이다. 농사꾼이 받아야 할 국가보조금(쌀직불금)을 호텔에서 커피잔이나 만지작거리는 고급공무원들이 뺏어가는 세태를 지켜보면서 公義와 大同의 진정한 의미를 자꾸만 되새기게 된다.


앞으로는 로봇을 만들어 우리의 지도자로 모시면 좋겠다고 혼자 실없이 웃어본다. 로봇을 만들 때 아예 양팔의 팔꿈치를 안과 밖으로 모두 꺾어질 수 있도록 만들면 백성들에게도 먹을 것이 부담 없이 돌아오지 않을까 해서이다.


by 박찬종 | 2008/12/29 09:41 | 박찬종의 한마디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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