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자동차 수리도 예술이 된다 - 사키야마 사장

 

△ 미친놈 소리 안 듣고는 벤처 못한다


․ 때론 자동차 수리도 예술이 된다  -  사키야마 사장

고급 외제승용차를 전문으로 수리하는 <사키야마 자동차 서비스>의 사키야마 사장


학력 중졸, 나이는 55세, 사장을 포함해서 직원은 2명, 자동차 대여석 대가 들어가면 꼭 들어차는 40평 수리공장이 전부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 공장은 일본에서 가장 땅값이 비싸다는 동경의 최고 부자동네인 미나토구에 세워져 있다. 그 이유는 이렇다. “부잣집 어르신들, 차가 고장 나면 언제든지 오십시오. 제가 10분 거리에서 대기하고 있습니다! 마치 청진기를 들이대고 환자를 진찰하는 것과 같은 예술가 수리공 시키야마 사장. 혼다를 비롯한 일본 유수 자동차회사의 임원들이 그의 손끝에서 꼼짝 못한다.


열심히 놀다보니 성공이 따라왔다!


사키야마 사장은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자동차 수리공이다. 그는 항상 검은 기름때가 묻은 얼굴과 작업복 차림에, 손에는 늘 커다란 해머나 스패너를 들고 있다. 중학교를 졸업한 열여섯 살 때부터 지금까지 손에서 공구가 떠난 적이 한 번도 없다.

“왜 자동차 수리를 택하셨습니까?”

질문을 던지자 사키야마는 말한다.


“노는 것이 너무 좋아서 놀기 위해 했습니다!”


그에게는 자동차 수리가 오락이나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사키야마 사장이 스물한 살 때였다.

자동차 수리센터의 사장님이 그를 부르더니 뜬금없이 물었다.

“너 나중에 뭐 할래?”

쭈뼛거리는 사키야마에게 사장님이 호통을 쳤다.


“네놈은 독립해서 직접 수리를 하지 않으면 못 배길 인간이야! 오늘부터 네가 현장감독을 맡아!”


세상으로 나가기엔 열여섯도 너무 늦다


사키야마의 부친은 그가 네 살 때 세상을 떴다. 그 후 어머니는 쌀장사를 하며 아들 둘을 키웠다. 커다란 쌀부대를 짊어지고 힘들게 일하는 어머니를 볼 때마다, 사키야마는 빨리 세상 밖으로 나가 돈을 벌어 어머니를 돕고 싶었다고 한다. 뭔가 하고 싶어서 한창 좀이 쑤실 때 어머니가 말씀하였다.


“너는 재주가 그리 많지 않으니 네가 좋아하고 재미있어하는 일을 하고 살아라.”

‘내가 좋아하는 일이 뭘까?’


사키야마는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당시 그는 미국에 관심이 많았다. 어릴 적 몸집이 커다란 미군병사들이 지프를 타고 지날 때마다 아이들은 “기브 미 초콜릿!” 하며 꽁무니를 쫓아 달렸다. 초콜릿을 받아먹을 때마다 사키야마는 일본도 미국처럼 강한 나라가 되기를 열망했다고 한다.

‘미국으로 갈까?’

불과 열여섯의 소년은 대담한 계획을 세웠다.

‘화물선을 몰래 타고 미국으로 가자!’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엄마와 동생이 발목을 잡았다. 그는 의리와 가족의 정을 소중히 여기는 지바현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홀로 고생하시는 어머님을 두고 갈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일본에서 할 수 있는, 미국과 가장 가까운 일은 무엇일까. 사키야마는 고민을 했다. 그때 잭 다나카 1세라는 재미교포가 외국인을 상대로 ‘잭스거라지’라는 자동차 수리공장을 하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는 곧바로 찾아가 뭐든지 시켜달라는 심정으로 스패너를 잡았다.

바로 이 회사에서 사키야마는 신나게, 재미있게 12년간을 놀았다. 그리고 스물한 살 때 다나카 사장의 전폭적인 신임 하에 현장감독을 맡았다. 그때 기분이 상한 선배 수리공들은 사표를 던지고 나갔다고 한다. 그래도 사장의 신임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스물네 살이 됐을 때, 다나카 사장이 갑작스레 사망했다. 다나카의 부인은 남편의 정신을 물려받은 사키야마가 공장을 이어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렇게 해서 사키야마는 스물네 살에 잭스거라지의 경영자가 되었다. 수리공으로서의 기술력과 경영자로서의 매니지먼트를 골고루 배우게 된 것이다.

스물여덟 살이 되었을 때 사키야마는 12년간의 현장 경험을 발판으로 자신만의 사업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공장이 없어서 수리공구를 가득 실은 자동차를 끌고 다니면서 손님이 오라는 데로 달려갔다.


“24시간 서비스를 해줍니다. 언제 어디서나!”


이것이 그의 표어였다. 정말 그는 24시간, 언제 어디서나, 재미있게 일했다.

그로부터 25년이 흘렀다. 사키야마는 지금 동경 최고의 부자동네라는 미나토구에 40평의 공장을 갖고 있다. 이 동네에는 폭스바겐, 크라이슬러, BMW 등을 몰고 다니는 사키야마또래의 중년 신사들이 유난히 많다. 이들은 차에 조그만 생채기라도 나면 벌벌 떨며 1초도 참지 못하고 사키야마의 공장으로 달려오는, 사키야마의 포로들이다. 그들에겐 어마어마해 보이는 승용차를 마치 아이 다루듯이 주물러대는 사키야마가 위대해 보인다.

그 경의의 표현으로 그들은 사키야마를 자동차 홈닥터라고 부른다.


외제차 수리는 나밖에 없다


동경의 그 많은 자동차 수리센터 중에서 ‘사키야마자동차 서비스’가 단연 돋보이는 이유가 있다. 우선 그의 공장은 일본에서 제일 땅값이 비싸다는 미나토구에 있다. 이 동네에 자주 오지 않는 사람들은 거리를 지나치다가 “아니, 왜 자동차 수리센터가 여기에 있지?” 하며 의아해 한다. 그만큼 사키야마자동차 서비스의 위치는 파격적이다.


덕분에 사키야마는 고객의 요구에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었다. 차가 고장 나면 단 5분이라도 운전하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다. 되도록 집에서 가까운 곳에서 수리받기를 원한다. 사키야마의 공장은 아침 출근길에 잠깐 들를 수 있을 정도로 가깝고 교통도 편하다. 미나토구의 주민들은 “사키야마 덕분에 자동차 고장 공포증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고 말한다.


또 한 가지, 공장이 중심가에 있는 덕분에 규모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고장 난 자동차는 빠르면 십 분, 늦어도 반나절이면 재빨리 수리할 수 있고 곧바로 또 다른 고장 난 차가 들어온다. 공장 안에는 늘 5,6대의 자동차가 있지만 고치고 내보내며 쉴 새 없이 바뀐다. 덕분에 직원이 사장을 포함해 2명으로 해결됐다. 만약 시외로 나갔다면 인원을 더 늘리고 자동차도 더 많이 받아야 수지가 맞았을 것이다.


5년 전 그가 미나토구에 공장 부지를 마련하느라 쓴 돈은 2억5천만 엔이란 거액이었다. 다행히 거품경제가 걷힌 후라 땅값이 내려가 그나마 싸게 산 것이다.

“땅값은 다 뽑으셨습니까?”

이렇게 묻자 사키야마는 웃으며, “아직 노력중입니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만한 투자 가치가 충분했습니다. “

사키야마의 말이다. 하지만 사키야마의 성공 비결이 단순한 공장의 위치 덕분일까. 사키야마는 일본에서 외제 자동차를 두려움 없이 수리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기술자 중의 한 사람이다.

벤츠나 크라이슬러, BMW 등 어느새 일본도 외제차의 천국이 되었다. 특히 미나토구는 고급 외제자동차의 본산으로 외제차 보유비율이 가장 높은 지역이다. 하지만 이 많은 외제차들이 외상을 입거나 고장이 나면 갈 곳이 없다. 제조사의 수리센터는 대부분 외진 곳에 떨어져 있으며, 서비스를 받는다 해도 고객의 까다로운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볼보 85년형을 모는 한 고객이 땀을 뻘뻘 흘리며 사키야마를 찾아왔었다. 엔진에 이상이 온 것 같이 서비스센터에 갔었지만 이미 구형이라 고치기 힘들다는 진단을 받았다고 했다. 자동차를 자기 몸보다 더 아낀다는 그 고객은 얼굴이 사색이 되어 있었다. 사키야마는 능숙하게 보닛을 열고 엔진을 만지기 시작했다. 한 시간 뒤 그 고객은 엔진을 부르릉거리며 액셀러레이터를 신나게 밟으며 떠났다고 한다.


이런 대단한 솜씨 때문에 사키야마에게는 팬이 많다. 유명 화가, 배우, 기업인들, 자동차 연구가들, 대학교수 등이 선물한 글과 그림들로 공장 벽을 보대할 정도다. 덕분에 삭막하기만 한 자동차 수리공장이 마치 전위예술가의 전시장처럼 보이기도 한다.

사키야마의 고객들은 그에게 “당신이라면 마누라도 맡길 수 있겠어”라며 농담을 한다. 다른 수리센터들은 대부분 기계적 결함만을 고쳐주는 것으로 끝내지만 사키야마는 아예 자동차와 대화를 나눈다. 필요하다면 청진기까지 꺼내서 오감을 활짝 열어놓고 자동차를 바라본다. 무슨 불안이 있는지, 어디가 아픈 건지 진찰하고 치료하는 의사 같다. 고장 난 곳뿐만 아니라 앞으로 고장 날 가능성이 있는 곳인지 미리 점검해 준다. 그래서 사키야마에겐 ‘자동차의 홈닥터’라는 별명이 붙었다.


“고장 나서 고치는 것만이 수리가 아니다. 고장 나지 않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 수리다.”


바로 이것이 수리공 사키야마의 철학이다.


“자동차를 더 이상 운송수단으로만 보아서는 안 됩니다. 이제 자동차는 패션이며 문화입니다. 좋은 그림이나 음악을 받아들이듯이 예의를 갖춰 존중해야 합니다.”


그는 일본도 이제 자동차의 성능만 추구하는 풍토에서 벗어나 자동차에 문화적 향기를 쏟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의 자동차 공장은 6시 이후로는 자동차를 좋아하는 애호가들의 모임터가 되었다. 자연스럽게 모여든 다양한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자동차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밥도 먹고 술도 마시는 사교의 장이 되었다. 이른바 자동차 애호가들의 살롱 같은 장소가 된 것이다. 가끔 의기투합이 되면 김밥을 싸들고 소풍도 간다.


나는 동경도지사보다 행복한 사나이!


사키야마는 말한다.


“내가 먹고살기 위해 마지못해 자동차 수리공이 되었다면 지금의 성공이 있을 수 있었을까요?”


그렇게 재미없게 일했다면 그는 지금쯤 대기업의 자동차 수리공장에서 감독 눈을 피해 툴툴거리며 술이나 마시는 한심한 인간이 됐을 것이라고 한다. 좋아하는 일을 하고, 덕분에 먹고사는 것을 걱정할 필요 없을 정도로 돈까지 벌고, 사키야마는 지금 자신이 무척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자부한다.


“행복으로 따지자면 동경도지사보다 행복할 겁니다. 동경도민이 총 1천만이지만 그 사람들이 모두 도지사를 사랑할까요? 나는 일본 적국에 있는 7천만 자동차 운전자들의 사랑을 받습니다. 얼마나 행복한가요!”


학력에 상관없이 좋아하는 일 한 가지에만 파고들어 성공의 길을 걸은 사키야마. 그는 같은 인생철학을 아들에게도 고스란히 물려주었다.

올해 스물다섯이 된 아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동경의 어느 클럽에서 DJ일을 하고 있다. 공부하길 싫어하고 음악과 춤, 놀기만을 좋아하는 아들에게는 최고의 선택이 아니었겠느냐고 사키야마는 말한다.


“어쩌면 우리 아들이 동경 최고의 DJ가 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나 좋아서 하는 일. 그 곳에 길이 있다. 사키야마의 당당한 자기 확신에 부러움마저 느껴진다. 우리는 과연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는 것일까. 하고 싶은 일이 무언지 아는 사람은 또 얼마나 될 것인가.


박찬종이 찾아낸 일본도 놀란 일본의 성공 벤처이야기










by 박찬종 | 2009/01/07 16:29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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